상단여백
HOME #부산소통 영화상영
5천명으로 20만 명을 물리친 고구려 장군 양만춘의 영화 ‘안시성’ 

영화 ‘안시성’을 얘기하기 전에 정말 어렴풋이 남아있는 고구려 시대 양만춘 장군이 활약했다는 ‘안시성 전투’에 대해 먼저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안시성 전투’는 역사적으로 645년(보장왕 4)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와 안시성에서 벌인 공방전을 말한다. 수나라에 이어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된 당은 호시탐탐 고구려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제27대 임금인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이를 트집 잡아 쳐들어왔다.

당의 임금인 태종은 이세적을 선봉 장수로 내세운 뒤 직접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당의 육군과 수군은 동시에 고구려를 공격했고 개모성과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이들은 기세를 몰아 안시성으로 향했다. 안시성은 험준한 곳에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였고, 주변에는 무기의 재료가 되는 철광석이 풍부한 데다 기름진 땅이 있어 식량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안시성은 호락호락 성문을 열지 않았다.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성주 ‘양만춘’의 지휘 아래 백성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 군의 거센 공격을 막아냈다. 거듭되는 적군의 공격을 번번이 물리치면서 기세도 높아졌다. 도저히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당나라 군은 50만 명을 동원해 안시성의 성벽보다 높은 토산(土山)을 쌓아 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토산의 한 부분이 무너지면서 되레 고구려 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진전 없이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식량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지쳐 갔고, 당 태종은 어쩔 수 없이 철수를 명령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영화 ‘안시성’에서 적으로부터 항복을 권유받자 이에 대한 화답으로 성주 양만춘의 일갈(一喝)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

영화 ‘안시성’은 2018년 김광식 감독의 고구려 역사영화다. 양만춘 역으로 미남 배우 조인성이 맡았다. 영화 ‘안시성’은 서기 645년 지금의 중국 랴오닝 성 하이청시 남동쪽 인근에서 벌어진 ‘주필산 전투’를 거대한 스케일로 그려냈다. 당시 당 태종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 싸운 양만춘 장군의 88일간의 치열한 싸움을 스크린에 오롯이 담기까지 7개월의 촬영 기간과 220억 원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라 할 것이다.

‘안시성 전투’는 1400여 년 전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기록할 만한 승리의 역사라고 한다. 영화 ‘안시성’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전사들이 안시성의 입지적인 지형을 활용한 지략과 전술로 아군의 40배 전력의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당나라 군대에 맞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버금가는 승리의 전투였음을 어필하고 있다.

개인적인 영화 평은 ‘영화 안시성’은 스케일이 크고 무엇보다 재밌고 시원하다. 안시성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당의 군대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우는 할리우드급 스케일과 통쾌한 전투신이 관객에게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물론 이 영화도 부족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 영화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노력과 한국 영화도 이렇게 스케일이 크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당나라 대군의 물밀듯 쳐들어오는 기세에도 굴하지 않는 침착한 작전 지휘. 급기야 마지막에는 피할 수 없는 혼전과 난전의 백병전에까지 돌입해야만 하는 성주 양만춘 장군의 리얼한 전투 장면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압권이었다. 남주혁이 연기한 ‘사물’역의 ‘태학도’는 오늘날 대학의 엘리트군인 것 같다. 역시 태학도 출신의 양만춘은 학식에 더해 풍부한 실전 경험에서 체득한 지혜와 무예가 출중한 엘리트 장군이었던 것이다.

신라에는 화랑이 있듯, 고구려에도 엘리트를 키워 국가 운영의 기둥으로 쓰는 태학도라는 것이 있었다.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문무겸전의 장군 양만춘의 고뇌에 찬 활약상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한껏 그려내고 있다. 동질의 여타 다른 시대물들이 최근 계속 흥행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영화 ‘안시성’은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겠다.

일단 영화의 시작은 스케일에 찬 전투 신을 먼저 보여준다. 전투 스케일은 역대 한국 영화 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백미라 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위력적인 성 공격 무기였던 포거(抛車: 큰 돌을 날려 보내는 투석기)와 충거(衝車: 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를 동원해 그 많은 군사와 함께 안시성을 공격하는 장면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성벽이 무너지고 군사들이 죽음에 직면해도 이에 굴하지 않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그 성민들의 요지부동한 자세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안시성의 이 같은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당의 군사는 퇴각하였다가 다시 재정비해 쳐들어오는 사이 안시성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도 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들과 여동생이 죽고, 몇몇의 중요한 장수들이 계략에 말려 죽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늘 굳세게 극복해 냈다.

성주 양만춘 장군은 인자하고 선량하면서도 매우 용맹스럽게 그려졌다. 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덕장이자 용장으로. 성주 양만춘의 다양한 작전의 지혜와 성안의 군대와 성민들의 결사항전의 용기는 안시성을 점점 더 난공불락의 요새화로 만들어 갔다.

당의 군대는 60일에 걸쳐 성의 동남쪽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안시성 성벽보다 높게 토산(土山)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성을 공격해왔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고심하고 있을 때 성민들의 죽음을 불사한 희생으로 요즘의 땅굴 모양을 토산 아래쪽에 파서는 토산을 무너지게 하고 그 틈을 이용해 무너진 성벽 사이로 빠져나와 오히려 양만춘 군대가 토산을 점령했다.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전투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 오랜 적 애기이고 역사적으로도 기록들이 희미하다 보니 그런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 기억이 희미한 정도였다. 그런데 이 '안시성'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고구려의 전투사를 다시 재조명하게 됐고, 양만춘 장군에 대해 많은 관심과 인식을 새로이 갖게 됨을 다행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연개소문은 역할 자체가 별로 없다. 오히려 불리한 전투에 15만의 군사를 보내 전멸하다시피 한 무능한 장군으로 비칠 뿐이고, 연개소문은 양만춘을 죽이려고 했던 인물로 설정되고 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유일하게 복종하지 않았던 안시성 성주 양만춘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역사적으로 2개월이 넘는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가 당을 물리치고 그 패배의 후유증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 태종 이세민이 얼마 못가 죽었다는 것이다. 양만춘 장군에 대한 얘기가 역사적으로 남은 기록들이 적다 보니 이 영화 역시 픽션을 많이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결국 이 영화 ‘안시성’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높은 활약상을 그려냈다고 해야겠다.

역사적으로 가장 번성하고 국력이 강했던 국가가 고구려임에도 고구려를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영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고주몽 정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고구려에 대한 기억을 되돌아보면 을지문덕, 광개토왕, 주몽, 연개소문 등 고구려의 유명 인물들에 대한 영화가 있었는지는 거의 기억에 없다. 다만 역사드라마에서는 가끔 다루어지기도 했다. 역사 기록의 부재와 스케일에 대한 제작비 문제 등은 결국 가까운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전찬호 기자  busaninnews@naver.com

<저작권자 © 부산IN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